4-3 : Voyager Out of Headspace
Voyager Out of Headspace
헤드스페이스를 벗어난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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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 우리 모두가 기다려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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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써니가 잠시 동안 패러웨이 타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써니는 이 날이 가능한 만족스럽기를 바랐다. 오전은 공원에서 보냈다. 모든 게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다. 그래도, 즐거웠다.
써니가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느라 바쁜 사이, 히로는 이미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준비해 놓았다. 켈은 마리의 무덤 바로 옆에서 소풍을 하자고 제안했다. 히로는 이 제안에 잠시 불편한 기색을 보였고, 써니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소풍을 가기로 했다. 마리는 이 방문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
친구들과 같이 먹는 음식의 맛은 최고다. 단지 음식의 질 때문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도 즐거움을 더해주었으니. 친구들과 함께 다시 익숙한 담요 위에 앉는 것은 써니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지만, 바질이 없고 마리도 없어서 아쉽다.
마리의 묘비를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인다. 그는 마리를 사랑했고 정말로 그리워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 속 한구석이 그에게 다르게 말했다. 써니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럴 수 있을 거야. 난 널 믿어, 동생." 마리의 목소리가 말했다. 한 쌍의 반투명한 팔이 뒤에서 써니를 감싸안았다. 써니는 누가 알아채기 전에 재빨리 눈물방울을 닦아냈다.
여름 오후의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소풍을 정리한 후, 공짜 에어컨을 위해 해가 지기 전 몇 시간을 하비즈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만화책 코너의 한 구석에 모였는데, 우주소년 선장 만화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이 만화는 그들 모두가 다양한 정도로 즐긴 시리즈다.
써니는 외톨이로 지내던 동안 이 만화 시리즈를 읽는 걸 그만두었다. 신간을 사러 나온 적도 없었고, 엄마에게 사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다. 가끔은 만화 연재를 따라잡을 생각을 했지만 그럴 기회나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써니는 책들을 즐기고 있어야 했지만, 자신이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질에 대한 걱정과 무언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진심으로 즐기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야... 다른 우주소년이 최고야! 켈은 책을 내려놓으며 감명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 호에서, 쉐이드 라미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와 의심을 퍼뜨리려 했고, 그것이 우주소년에게 영향을 주어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다른 우주소년은 두려움에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쉐이드 라미아와 오랜 싸움 끝에 승리했다. 어떤 이들은 이 호가 약간 심하게 개연성이 부족하다 말하지만, 그게 켈이 좋아하는 단순함과 솔직함이다.
"다른 우주소년도 괜찮다고 생각해." 오브리는 다른 만화 뒤에 머리를 파묻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만화를 다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눈이 붉어진 걸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메인 성격이 더 좋지만."
"뭐? 하지만 메인 우주소년은 너무 감성적인 놈이라고!" 켈은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켈은 오브리처럼 폭력적인 사람이 다른 우주소년을 더 좋아할거라 생각했으니. 그에 비해, 메인 우주소년은 마음이 아주 여렸다. "너처럼 분홍색 머리를 하고 있어서 더 좋은 거야?"
"닥쳐!" 오브리가 잡지를 말아들어 켈의 어깨를 후려쳤다. 히로가 재빠르게 오브리에게서 책을 빼앗자 오브리는 아무런 반발 없이 책을 놓았다. 히로는 책이 훼손되지 않았는지 확인한 후 책을 책꽃이에 다시 꽃았다.
모든 슈퍼히어로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다정함을 가지는 건 아니다. 메인 우주소년은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친절했다. 분홍색 머리도 플러스 요인이긴 하지만 그게 오브리가 좋아하는 이유였다.
부모님이 갈라지기 전, 때때로 오브리는 모든 싸움을 피해 다락방에 숨어 우주소년이 사랑 없는 가정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데려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어린애 같은 기분이 들어 오브리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히로는 만화를 아무렇게나 휙휙 넘겼다. 그는 보통 만화나 십대의 서브컬쳐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 관심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켈의 수다 덕에 캐릭터와 내용을 조금은 알고 있었고. 히로는 잡지를 적당한 위치에 놓던 중 써니가 같은 페이지에서 잠시 멍하니 있던 것을 알아챘다.
"써니, 어떻게 생각해? 넌 어느 우주소년이 더 좋아?" 히로는 써니가 이 대화에 함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해주려고 물어보았다.
"응?" 써니는 눈을 깜빡이며 환상에서 벗어났다. 질문을 처리하는 데 1초가 들었고, 답을 생각하는 건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메인 우주소년은 지위에 상관하지 않고 항상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중했다. 꿈속에서 써니가 그의 곁에 있었을 때 써니는 안도감을 느꼈다. 써니는 우주소년에게 자신이 원하는 어떤 도움이라도 요청할 수 있었고, 우주소년은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그 대가로 우주소년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써니는 그를 도울 것이다.
반면 다른 우주소년은 친절이 효과가 없을 때 자신을 대변해 줄 용기가 있었다. 가끔 써니는 자신에게도 그런 정신력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주소년이 감정에 휩싸여 분노했을 때, 써니는 약간의 익숙함이 가슴속에서 불안하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써니는 항상 그룹의 소심한 사람이었고, 너무 겁이 많아 화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우주소년이 눈 먼 분노 뒤에 느꼈던 후회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써니... 괜찮아?" 켈은 써니가 벌써 약간 창백해진 걸 알아채고 걱정스럽게 불렀다.
"..." 써니는 이어지는 생각에서 벗어나왔고, 아직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둘 다 좋아. 그리고, 난 괜찮아." 써니는 더 많은 질문이 쌓이기 전에 빠르게 대답했다.
히어로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좋은 의견이야! 두 성격은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이고, 그 복잡함이 바로 사람의 본모습이니까."
"아니, 메인 우주소년과 다른 우주소년은 다른 사람이야! 그저 같은 몸을 가졌을 뿐이라고!" 켈은 히로가 전하려고 했던 철학이 무엇인지 새기지 않고 대신 오류를 지적했다.
"그건 그냥 센터피드 박사의 생각일 뿐이야! 그들은 이중인격의 근원을 절대 증명하지 않아!" 오브리가 반박했다. 분명 이 시리즈는 연속성에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은 만화 시리즈의 내용을 둘러싸고 마치 복잡한 문학 작품처럼 토론했다. 히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듣기만 했다. 써니도 조용했지만, 써니는 동의하는 부분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서 들었다.
토론은 어떻게든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끝났을 땐 해가 지고 있었다. "써니, 갈 준비 됐어?" 히로가 물었다. 써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진 책들을 치우고 곧장 문 밖으로 나갔다.
써니의 다리는 저절로 움직였다. 그의 정신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자 다른 감각들이 흐릿해졌다. 그들은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나무집을 보고 싶어했기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써니도 보고 싶었다. 마리가 죽은 후, 써니는 뒷마당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언가가 항상 거기 있었다. 그녀가 매달린 그루터기에...
무언가 잊고 있다며 찌르는 듯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좋은 상황은 아닌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잊어버린 것이 뭐든 너무 끔찍해서 기억하려고만 해도 몸이 떨려온다. 자신은 결코 그것을 마주할 힘이 없을 테고, 어쩌면 잊어버리는 게 더 나을지도...
"야! 써니! 기다려!" 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써니가 멈추며 돌아서니 친구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써니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과 친구들 사이의 거리에 혼란스러워하며 세 사람이 따라잡기를 기다렸다.
"와, 우리가 따라오지 않던 걸 눈치 못 챘나 봐?" 오브리가 말했다. 오브리의 손에는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는데 써니가 떠날 때 하비즈에서 산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 오브리가 갑자기 가방을 건네주었다.
"서프라이즈!" 켈은 써니에게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써니는 반바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가방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저걸 가져도 괜찮을까?
"네가 이사가기 전에 선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다 같이 이걸 샀어. 좋아할 거 같아서." 히로가 상황을 설명했다. 돈을 가장 많이 낸 건 히로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브리는 써니가 여전히 망설이는 것을 보고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써니의 손에 쥐어주었다. 가방의 내용물은 우주소년 만화의 호 중 하나를 인쇄한 것이었다.
"이 호를 다 읽지 못했다고 해서 골랐어!" 켈이 말했다.
써니는 말없이 책을 바라보았다. 그 책은 우주소년이 온갖 역경 속에서도 진실을 찾아낸 "Never/Always Get Into Trouble" 호였다. 그가 고개를 들자 모든 친구들이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 지었다.
"...고마워" 써니는 중얼거렸다. 마음을 정했다.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알아낼 것이다. 내면에서 흔들리던 두려움은 굳은 결심으로 바뀌었다. 만약 우주소년이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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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시는 맑은 물 위에서 얼굴이 아래로 향한 채 바다의 거품 덩어리처럼 떠다녔다. 숨을 쉬지 않고, 뛸 심장도 없는 그 모습은 시체에 가까웠다. 파도가 그의 몸을 분홍색 금속 사다리에 부딪히게 하자, 스페이시는 방금 전 잠든 것처럼 튕기듯 일어났다. 그는 파도가 그를 멀리 떼어놓기 전에 재빨리 사다리에 몸을 걸쳤다.
그는 물에 젖은 몸을 위로 끌어 올려 땅 위로 몸을 던졌다. 메스꺼움 때문에 스페이시는 몸을 구부리자 곧바로 물과 다른 액체들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는 기침하고 토하며 더 많은 검은 점액을 내뱉었다.
마침내 구역질이 멈춘 후, 스페이시는 토사물을 피해 걸어가 풀밭에 쓰러졌다. 드러누워서 숨을 몰아쉬자, 속이 텅 비어 있는 게 느껴진다. 오모리가 자신의 몸을 으스러트렸을 때의 극심한 고통은 더이상 없지만, 구토로 인한 피로감이 있다. 그 일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몸이 붙어있는걸까? 스페이시는 떨리는 손으로 셔츠를 걷어 올려 피해를 확인했다.
복부의 살갗은 오른쪽 얼굴에 있는 찰흙과 같은 질감으로 대체되었다. 숨을 쉴 때 여전히 복부가 움직이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스페이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불안해하며 이상한 살갗에 손을 얹었다. 손톱을 찔러보아도, 여전히 감각이 없다.
"제기랄..." 스페이시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배를 가렸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더 훼손될 수 있을까?
그는 반듯이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으며, 달빛만이 빛을 비출 만큼 강했다. 공포의 향기가 헤드스페이스의 허공을 떠돌며 무겁도록 숨쉬기 힘들게 만들었다. 블랙스페이스는 이곳을 더럽히고 있으며, 곧 써니가 떠남으로 모든 것이 잊혀질 것이다.
조금 쉬고 난 뒤, 스페이시는 휘청거리는 발로 일어섰다. 젖은 옷이 몸에 불편하게 달라붙는다. 머리는 여전히 빙빙 돈다. 그의 몸과 마음 모두가 끔찍했다.
스페이시는 안개가 자욱한 바다 한가운데의 작은 섬에 있었다. 바다에는 작은 땅과 나무들이 흩뿌려져 있었으며, 드넓은 숲의 윤곽이 수평선 위에 서 있었다. 희미한 사람의 그림자는 물 위를 정처없이 떠돌며 조금씩 존재가 사라져간다. 이 섬의 유일한 건물은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등대였다. 등대에서 나오는 희미한 붉은 빛은 안개를 가를 만큼 강하지 못했다.
스페이시는 등대로 들어갔다. 1층은 예전에 거실이었던 것 같았지만, 오랜 시간 버려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자갈과 시든 화분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고, 가시 덩굴이 풍화된 벽을 파고들었으며, 가구들은 두꺼운 먼지에 덮였다. 방 중앙에는 불빛이 있는 곳으로 통하는 계단실이 존재했고, 계단 뒤에는 검은 마커로 끔찍하게 훼손된 거대한 몽상가의 가족사진의 사본이 있었다.
방 구석에는 쓰이지 않는 벽난로가 있었다. 스페이시는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좀 피우려 마른 잎을 따 벽난로로 향했다. 땔감을 넣기 전 벽난로 안을 훑어보다가, 평범한 벽난로가 아닌 것을 알아채고 멈췄다. 대신, 이곳은 다른 곳으로 통하는 창문이다.
벽난로 밑은 어두운 평원이었다. 써니는 그곳에서 조명을 받으며 있었다. 묶여있는 젊은 여인이 지독한 바람에 힘없이 흔들린다. 써니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떨리는 이빨 사이로 빠르고 얕은 호흡을 내쉰다.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선 써니는 한 가지 두려움을 더 극복해야 한다. 그 두려움은 마지막에 생겨났음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랑하는 누나에게서 배운 세 가지 기술은 누나의 시체에서 태어난 하나의 두려움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렇지만, 써니는 버텼다. 써니는 눈을 감았지만 두 발로 서 있었다. 용기가 솟아오름과 함께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호흡은 점점 느려지고 안정되었으며, 심장박동도 마찬가지였다. 써니는 자신이 믿었던 것보다 더 의지가 강했다.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고,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삶의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스페이시는 오모리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아냈다.
써니가 진실을 받아들이면, 그를 머리 속에 가둬두었던 족쇄가 사라진다. 써니는 제자리로, 깨어있는 세계로 돌아가리라. 헤드스페이스였던 아름다운 환상은 꿈처럼 잊혀질 것이다. 살아갈 세상이 없으니, 써니의 머릿속 사람들도 전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블랙스페이스조차 무너질테니, 탈출구는 없다.
스페이시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게 그가 자신과 같은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스페이시는 총을 들어 벽난로를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한 손이 총을 들고 있는 오른팔을 잡아 비틀었다. 그의 왼손은 몸을 뒤로 잡아당기며 벽난로에서 멀어졌다.
"날 놔줘!" 다른 자아는 자신의 다른 반쪽에게 비명을 질렀다. 두 자아는 최근 잘 어울렸지만 의견이 크게 엇갈리며 다시 갈라섰다. 둘 다 예전처럼 뒤에 있기를 거부하며 내면에서 소리쳤다. 누구도 몸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기에, 그저 사지를 위해 싸웠다.
다른 자아는 순식간에 오른팔을 빼냈다. 그가 다시 조준하기도 전에 다리가 왼쪽으로 뛰어 몸을 벽에 부딪쳤다.
"써니가 다치게 놔둘 순 없어!" 메인 자아는 지키고자 하는 소망에 충실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벽난로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졌다.
"써니를 다치게 할 필요는 없어!" 다른 자아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들었다. "그냥 노력을 조금 방해하고 진실을 숨길 뿐이야!" 그는 절뚝거리며 한쪽 다리로 앞으로 나아갔고, 얼굴은 절망한 채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을 유지하면 돼! 전부 살 수 있다고!"
"너는 미쳐가고 있어. 넌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고는 있어?" 메인 자아는 계단 모서리를 꽉 붙잡아 움직임을 멈췄다.
"네가 미친거야! 모두 죽게 할 셈이야?" 다른 자아는 자신의 왼손에 총을 겨누었다. 이 세상의 존속을 위해서, 그는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쏘리라…!
"아니, 나도 너만큼 살고 싶어! 그래도!" 메인 자아는 몸을 돌려 총을 방 건너편으로 던졌다. "써니도 살 자격이 있다고!"
"써니는 살 거야. 몇 년 동안이나 이 짓을 해왔잖아!" 벽난로를 향해 달려가려던 다른 자아의 시도는 그의 다리가 서로 걸려 넘어지며 단절되었다.
"그걸 산다고 해?! 그건... 사는 게 아니야!" 메인 자아는 공유되는 몸을 우악스럽게 움직여 벽난로에서 멀리, 써니에게서 멀리 떨어뜨렸다. "블랙스페이스가 얼마나 성장하는지 봐... 요즘 더 불안정해졌어! 써니는 이제 한계야!"
"그래서?" 다른 자아는 여전히 저항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아직 싸울 수는 있지만...
"정말 써니가 돌아와도 이 세상이 온전할 거라 생각해?" 메인 자아의 의견은 다른 반쪽의 머릿속에 천천히 들어갔다.
"..." 스페이시가 바닥에 드러누울 때까지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미 끝났어. 헤드스페이스는 어느 쪽이든 끝날 테니, 부탁이야... 써니는 진실을 알고 나아갈 자격이 있어."
자아 사이에 쌓였던 모든 긴장이 사라졌다. 스페이시의 모든 두려움과 분노는 압도적인 허무함에 짓눌렸다. 그가 한 일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중요치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안심이 되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스페이시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몽상가를 막지 않고, 그저 조금 더 편안한 휴식을 원할 뿐이다. 먼지투성이의 침대 위에서 쓰러지니,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매트리스가 콘크리트 바닥보다 조금 더 나았다. 등대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떨린다. 젖은 옷이 몸의 남은 온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추위가 반가울 지경이다. 그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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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스페이시의 어깨를 강하게 흔들고 있었다. 스페이시는 잠에서 깼지만 아직 눈을 뜨지 못했다. 여전히 감겨 있는 눈꺼풀 뒤로, 스페이시는 방이 선홍색 불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게 아마도 세계 종말의 첫 신호이리라. 그 생각에 무슨 일이든 할 의욕이 사라졌다.
흔들림이 계속되었다. 괴롭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집요했다. 스페이시는 마지못해 눈을 떴다. 물음표 얼굴을 한 여성이 앞에 있었다.
"아, 너구나..." 저체온증으로 스페이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타코에게서 떨어지려 옆으로 몸을 돌렸다. "제발, 혼자 있게 해줄래? 친구랑 축하나 하러 가."
타코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몽상가가 자기 걸 가져갔을 때 네가 네 걸 잃어버렸네." 그녀는 눈동자를 움직이는 듯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스페이시는 말없이 침대에 웅크리고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었다. 두 자아 모두 절망감에 짓눌려 둘 중 어느 쪽이든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타코는 상황을 살폈다. 스페이시는 여전히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이니, 지금 스페이시에게 필요한 건 두려움을 부숴 그가 빠져나오게 하기 위한 약간의 자극이다. 이를 결정한 타코는 자신의 촉수 팔을 스페이시의 머리 위로 찰싹 내려치며 올려놓고는 그를 침대에서 끌어냈다.
스페이시는 놀라서 소리쳤다. "놔, 이 망할!" 다른 자아가 빠르게 회복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는 몸을 돌려 애비의 팔을 쳐냈다.
타코는 재빠르게 스페이시의 뒤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침대로 돌아가는 길을 막았다. 그녀는 스페이시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앞으로 밀었다. "아니, 넌 나랑 같이 가야 해. 네가 꼭 봐야 할 게 있어."
타코와 스페이시는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서로 싸웠다. 그건 밀고 밀치기가 바보같이 뒤섞인 것에 가까웠다. 둘 중 누구도 서로를 심하게 다치게 하지 않았다. 스페이시는 이 세상의 마지막에 붉은색의 방에서 이런 유치한 놀이를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결국 그렇게 됐다.
타코는 계단실 안쪽의 사다리에다가 스페이시를 눌렀다. "올라가, 빨리, 빨리! 서둘러!" 그녀는 스페이시를 동요시키려 스페이시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감각의 문제 때문에 의도대로 잘 되진 않았지만, 스페이시는 마지못해 타코에게서 떨어져 뒤로 갔다.
꼭대기 층은 훨씬 더 밝았다. 써니와 진실 사이의 베일이 걷히며 사라진 전구가 돌아왔다. 빛나는 붉은 빛은 앞을 비추며 다시는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쌍안경 한 쌍이 창문 근처에 있었다. "한 번 들여다봐." 타코가 지시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걸 보라고? 사양할게." 스페이시는 시선을 돌렸다. 활기는 진작에 가라앉았다. 머리는 전보다 더 나아진 듯 했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이 끝남에 절망하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못 봤잖아." 타코는 더 이상 장난치지 않았다. 타코의 태도는 그녀가 말하는 동안 위엄을 발휘하게 해주었다. "이건 네가 봐야 할 일이야."
타코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감과 진지함이 스페이시의 메인 자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타코를 빤히 바라보았다. 타코는 그저 그의 기분을 이전보다 더 나빠지게 하려고 이걸 한 게 아니다.
"이번 일은 널 믿을게." 스페이시가 말했다. 그는 써니가 진실을 마주하게 했으니, 헤드스페이스에 일어난 일의 결과를 마주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다. 스페이시는 쌍안경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주요한 광원이 모두 붉게 빛나며 헤드스페이스 전체를 선홍색으로 뒤덮었다. 드넓은 숲의 중심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우주에 닿았다. 나무의 높이는 아더월드조차 뛰어넘었으며, 나뭇가지 중 하나에선 빈 올가미가 묶인 채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크고 노란 고양이가 마치 자신의 집이라 주장하는 듯 나무 꼭대기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크고 노란 고양이는 헤드스페이스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변화를 감시했다.
가혹한 붉은 빛에 휩싸인 헤드스페이스의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진실은 그들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그들을 망가트렸다. 그날의 원색적인 감정들이 그대로 가둬지고 유지되어 눈앞에 잔혹하게 번뜩였다. 이 끔찍한 독은 주민들을 두려움에 날뛰게 하거나 충격으로 기어다니게 만들었다. 심지어 더 깊은 우물을 떠나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고래 험프리조차 얼굴을 찌푸리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게 바로 스페이시가 예상했던 일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혼돈과 파멸이 찾아온다.
"아직 눈 돌리지 마." 타코가 스페이시의 뒤에서 말했다. 현재의 풍경은 비관적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단계다.
헤드스페이스에서 결코 지지 않던 핏빛 달이 수평선 너머로 내려간다. 별들 또한 먼 곳으로 사라진다. 뒤를 이어 등대의 불빛이 보인다. 타버린 것은 아닌 듯 전구가 아직 남아 있지만, 완전히 꺼질 때까지 불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헤드스페이스가 어둠에 잠기기 전에, 다른 일이 일어났다.
헤드스페이스 동쪽에서 샛노란 해가 떠오른다. 태양은 이번에도 다시 희망과 용기로 세상을 비춘다. 패닉에 빠졌던 사람들은 진정하고 태양을 가리키며 경외심에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 안개는 위로 떠올라 다른 모습의 구름으로 응축된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가 밝았다.
"진실이 초래할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을 과대평가해서 다행이야." 타코는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스페이시의 어깨에 문득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타코는 자신의 사고 과정을 설명했다. "우리는 몽상가의 상상력에 의해 형태와 영혼이 주어진 몽상가의 마음의 조각이야. 몽상가의 마음가짐이 바뀌면, 이 세상도 변하지. 한때는 몽상가가 진실을 마주하면 더 이상 이 세상이 필요하지 않기에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생각했었어. 그럼에도, 나는 몽상가에게 진실을 마주하라 격려했지. 오모리는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벌을 줬지만."
스페이시는 이마를 쳤다. 그 때에 너무 사로잡혀 이 소녀가 얼마나 논리정연한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어째서 이때까지 의문을 가지질 않았는지 믿을 수가 없네." 스페이시는 소녀를 가리켰다. "넌 타코야, 아니면 애비야?" 이 소녀의 말투는 해변의 엉망진창인 혼란스러움과는 전혀 다르다. 만약 그녀가 애비라면, 그녀는 감옥에서 어떻게든 나왔을 것이다.
"음, 넌 우주소년이야, 우주 남자친구야, 아니면 스페이시야?" 그녀는 웃으며 과장되게 몸을 굽혔다. "가장 현명한 자 애비, 널 도우러 이곳에 왔어! 써니가 진실을 마주했을 때, 난 이 그릇을 간신히 손에 넣었어. 다른 두 고대의 존재도 이 일을 목격하러 나타났는데, 마침 우연히 널 먼저 발견했지."
"때 맞춰 구조해 줘서 고마워." 스페이시는 머리를 긁적였다. 애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은 뭐야?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면 전부."
"내 가설은 몽상가가 살아있고 일관성 있는 한 헤드스페이스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거야. 몽상가는 언제나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고, 이곳을 도피처로 쓰지 않고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 세계관이 넓어지면 이곳도 많은 것이 바뀌겠지만." 애비는 스페이시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만약 네가 그것에 익숙해진다면, 난 네가 새로운 헤드스페이스에서 괜찮을 거라 확신해."
스페이시는 놀림을 받는 듯한 느낌에 애비에게 대답했다. "바지나 치마를 제대로 입는 것까지 같이 변했으면 좋겠네." 스페이시가 애비의 하반신에 시선을 두는 것은 항상 껄끄러웠다. 그는 변태처럼 보이지 않도록 재빨리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아비는 자신의 옷차림에 조금도 창피해하지 않고 팔을 옆구리에 올렸다. "왜? 편한데다 움직이기도 쉬워! 게다가 많은 슈퍼히어로들도 밖에서 속옷을 입잖아!"
"그렇게 되는 건 아닐텐데..." 스페이시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애비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어 답했다.
"그래도, 난 진심으로 널 찾고 있었어." 애비가 말했다.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