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 Voyager Out of Headspace
Voyager Out of Headspace
헤드스페이스를 벗어난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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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 원작과의 차이 : Never/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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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빛이 복도를 뒤덮어 스페이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세계 사이의 경계를 넘으며 몸이 뒤틀리는 느낌이 그에게 밀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힘이 찌그러질 정도로 강했다. 스페이시는 몸을 낮추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대비했다.
잠시 후, 빛이 견딜 만한 정도로 약해졌다. 스페이시는 밝기에 익숙해지자 조심스레 눈을 떴다. 예상대로 그는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다.
이곳은 헤드스페이스와 블랙스페이스와는 너무나도 다른 무거운 기운을 뿜어냈다. 블랙스페이스처럼 적대적이진 않지만, 자신의 존재와는 알맞지 않는 것 같았다. 새에게 평생을 물속에서 살라고 할 수 없듯이 스페이시도 이곳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
이 세계는 화려했지만 헤드스페이스처럼 파스텔 톤은 아니었다. 색깔을 말해보자면 좀 더... 세상 같았다. 하늘은 그가 사는 두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연한 푸른색이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 태양은 밝게 빛나며 여름의 열기를 물결치듯 내뿜었다. 더웠지만, 이건 블랙스페이스의 축축한 추위에 익숙해서다.
그는 줄지어 늘어선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아래에는 사람과 고양이가 모인 광장이 있었다. 주민들 중 누구도 흑백의 사람을 알아채지 못하고 문제없이 하루를 이어갔다.
스페이시는 옥상 가장자리에 앉아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시각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감각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는 행성의 중력이 자신의 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고정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의하지 않으면 떠내려 갈 지도 모른다. 팔을 꼬집어봐도, 가슴의 구멍에서조차, 마치 육체가 없는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게 흔히 유체이탈이라 말하던 건가? 그는 이런 일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고, 이 분야에 대해 지식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내 몸은 어디 있는거지? 블랙스페이스 어딘가에 두고 온 건가? 어떻게 돌아 가지? 여긴 대체 뭐야?
스페이시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한 쌍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스페이시는 시선의 근원을 쫓아 몽상가를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써니를.
써니는 흥미로운 것을 본 고양이처럼 스페이시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의 나른한 모습이나 천진난만하게 잔혹한 오모리와는 달리, 눈동자 뒤에는 현실감 없는 호기심의 빛이 가득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써니는 조금 더 살아 있는 것 같다.
"안녕, 써니" 스페이시는 써니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흔들었다. 써니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며 조심스럽게 작은 손짓으로 답했다.
써니 뒤에는 키가 큰 갈색과 오렌지색의 십대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써니? 써니? 왜 그렇게 한참동안 하비즈 간판을 보고 있는 거야?" 그는 물어보며 써니의 시선을 따라 스페이시가 있는 방향 주변을 바라보았다.
"너도 안녕" 스페이시는 옥상에서 십대에게 인사 하고, 좀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 십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밝은 햇빛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의 반응으로 짐작하자면, 그 십대는 스페이시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써니가 고개를 저으며 십대 아이의 탱크톱을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아니야, 켈. 안으로 들어가자" 써니가 작게 말했다. 그 조용한 말들이 선장의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특히 그 이름이.
켈? 아이들 중 하나잖아! 스페이시는 놀라움에 켈을 살펴보았다. 이곳의 켈과 헤드스페이스의 켈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몇 가지 있었지만, 자신은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급격한 변화는 블랙 스페이스가 만든 뒤틀림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건 시간이 흐르며 생기는 자연적인 성장에 가까워 보였다.
생각해보자, 여긴 어디지? 헤드스페이스나 블랙스페이스도 아니고, 써니와 켈의 몸이 자연적으로 성장한데다, 스페이시가 답했을 때 써니가 보여준 기분 좋은 놀라움은… 여기는 써니가 깨어 있는 세상인건가?
스페이시는 다시 아래를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사이에 써니와 켈은 이미 밑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 있었다. 스페이시는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이게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1층짜리 건물을 다치지 않고 뛰어내리는 건 스페이시에게 쉬운 일이지만,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볼 기회를 얻었다. 텔레포트 능력을 집중한 그는 지붕을 통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했다. 그의 모습은 흐릿해졌으나, 텔레포트 대신 단단한 바닥을 뚫고 아래로 떨어졌다. 재빨리 반응해 두 발로 착지 할 수 있었지만, 확실히 어색한 착지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그가 좋아하는 오려낸 판지였다. 그 예술품은 특징, 색상, 높이까지 모든 것이 정확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주소년 선장의 다른 자아였다.
스페이시는 판지로 만든 도플갱어를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움이 자만감보다 컸다. 왜 이게 여기 있는거지? 그는 헤드스페이스와 블랙스페이스 사이의 방랑자인데, 그건 둘 다 몽상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어떻게 몽상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그럴까? 스페이시는 다시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다. 내가 정말 몽상가의 머리 속 존재일까? 스페이시는 자신의 가장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고, 몽상가와 처음으로 만나기 전의 모든 게 사라진 것 같았다. 생각할 수 있는 건 어렴풋한 묘사와 상황의 단편들 뿐이었다.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미친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왜 내 모습이 장식되어 있는 거지? 이곳은 서점과 장난감 가게가 합쳐진 것 같았고, 경쾌한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며, 모든 벽이 아름다운 포스터로 장식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써니와 켈이 이 장소를 돌아다니며 모든 진열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써니가 물건을 집어 켈에게 보여주자, 켈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화에 따르면, 써니와 켈은 히로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써니는 곁눈질로 스페이시가 자신에게 다가오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스페이시의 입은 뭔가 말하려는 것처럼 약간 벌어졌지만, 손에 CD를 들고 있던 켈에게 가로막혔다.
써니는 깨어 있는 세상의 친구를 무시할 수 없었지만, 꿈속에서의 친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써니는 돌아서기 전 구석에 있는 책장을 가리키며 켈과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스페이시는 써니의 뜻에 따라 구석에 몸을 숨겼다. 선반의 내용물은 그에게 또 다른 충격이었다.
선반 위에는 우주소년의 이름이 적힌 만화책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책들은 그의 판도라의 항아리였다.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던 그의 희망은... 책들 속에 있었다. 동시에 그것들은 절망감을 안겨 줄 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면?
그는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진정하고 1권에 손을 뻗었다.
기억나기 시작했다.
이 책들에 그려진 모든 일들은 그에게 대화의 세부적인 요소까지 모두 진실이었다. 이것들은 기록되고 종이에 그려진 자신의 역사다. 아니, 그 반대가 맞다. 이 만화책에서 내가 생겨났어!
책에 따르면, 우주 해적으로서의 그의 첫 모험은 지구에서 8만 광년 떨어진 그의 고향 행성에서 일어났다...
헤드스페이스 외곽의 고향 행성...
날 만들어낸 사람이 써니가 아니었나?
스페이시는 책을 뒤집고 작가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J. 린" 그는 이 이름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창조자의 이름이었고, 자신은 그녀의 헤드스페이스에서 왔다!
미스터 아웃백이 말하지 않았었나? 사람들이 날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곳을 여행했다고? 그때 그는 늙은 카우보이가 헤드스페이스나 블랙스페이스의 구석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스페이시는 마침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다음 권으로, 또 다음 권으로 넘어갔다. 그가 앉아 있던 바닥에는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스페이시는 책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잊어버렸을까, 언제 잊어버렸을까?
결국 그는 자신의 기억이 책과 모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Never/Always Get Into Trouble" 호에서 그는 저지른 적 없는 큰 범죄 때문에 고향 행성에서 추방되었고, 진실을 찾기 위해 모든 호를 보낸다... 스페이시한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때 내가 뭘 했었지?
그의 기억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생각을 멈추지 마. 네 마음속 어딘가에 쓰여져 있으니 찾아! 그는 우주에서 홀로 떠돌다가 공허한 곳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그 뒤로... 뒤로는... 그와 그의 선원들은 재미의 작품에서 찢어져 써니의 헤드스페이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스페이시는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그때 이후의 모든 일이 그에게는 전부 낯설었다. 이 이야기가 자신의 기억으로 느껴졌지만, 그는 그 이야기를 결코 겪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헤드스페이스의 표면에 있는 사랑에 빠진 우주 남자친구와 같지 않은 것처럼, 자신은 본질적으로 책 속의 "우주소년 선장"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 넌, 누구지?"
스페이시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또 다른 우주소년 선장이 우뚝 서서 하나뿐인 진홍빛 눈으로 스페이시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 흑백의 우주소년은 컬러풀한 원본을 바라보았다. 그는 헤드스페이스에 있는 다른 복사본과는 달리, 스페이시의 존재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네가 누구인지 묻는 거다. 잉크 얼룩!" 우주소년은 말을 뱉었다. "넌 네 뿌리를 버리고 있는데도, 너 자신의 정체성이 없어! 자기 자신을 의심하다 사라져 버릴 건가?"
"..." 스페이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맨 처음부터 자신의 여정을 다시 되짚었다. 그리고 그는 시작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미가 이 모습을 만들기 전에도, 그는 이미 존재했다.
우주소년은 앞으로 손을 뻗어 스페이시의 멱살을 잡았다. "세 번째가 마지막이다. 넌 누구지? 대답해!"
스페이시는 놀랍도록 차분하게 우주소년을 바라보았다. 우주소년은 폭주하는 것 같았지만,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 또한 우주소년이기에 알 수 있다. 재미가 이 모습을 주기 전에 그는 무엇이었나? 아마도 무언가 다른 것, 다양한 것들. 그는 답을 찾았다.
"나는 너지만, 동시에 네가 아니야." 스페이시는 깨달음이 가져온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여행자야. 재미의 머릿속을 지나갔을 때, 나는 '우주소년 선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 이제 난 써니의 꿈의 일부가 되었어."
그는 우주소년의 손을 비틀어 악수하듯 잡았다. "난 이제 '스페이시'라는 이름으로 불려. 만나서 반가워."
우주소년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씩 웃으며 받아들였다. "좀 더 났네."
가게의 분위기가 변했다. 불빛이 약해지며 음악은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들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우주소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주 자아로 바뀌었다. 다른 자아의 위압감과는 달리, 주 자아는 보다 논리적인 방식으로 위압적이었다. "잘 지내. 몽상가는 영원히 잠들어 있을 수 없으니, 준비해야해." 우주소년은 사라지기 전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우주소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전부 사라졌다. 스페이시가 떠날 시간이다. 문을 열자 바깥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닌 반복되는 회색빛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블랙스페이스의 거리에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몸의 무게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스페이시는 목적 없이 거리를 걸으며 자신의 다른 반복에서 나온 말들을 정리했다. 물론 몽상가는 영원히 잠들어 있을 수 없다. 헤드스페이스에서 몽상가가 가진 모든 힘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깨어있는 세상의 사람이다. 영원히 잠드는 것은 몽상가에게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몽상가가 어떻게든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는 한… 스페이시는 재빨리 이 생각을 떨쳐냈다. 그런 건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몽상가가 깨어 있는 동안 헤드스페이스는 어떻게 될까? 스페이시는 자신의 자아가 바뀌며 일어난 게 아닌 기억의 공백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 헤드스페이스는 몽상가가 잠에 들지 않고도 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가? 왠지 스페이시는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우주소년이 자신에게 경고하지 않았을 테니.
그는 코너를 돌자 거리에 있는 사람의 형상에 정신이 팔렸다. 저 키에 긴 양갈래 머리, 혹시…?
"스위트하트? 스위트하트!" 스페이시는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스위트하트는 언제 여기에 온 걸까? 색이 없는 것으로 보니, 그녀는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다. 스페이시는 스위트하트의 반복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길 바랐다.
그 사람은 돌아서며 스페이시가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녀를 가까이서 보니 사실은 스위트하트와 매우 달라 보였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스페이시를 바라보며 입가에 손을 얹고 빙그레 웃었다.
"미안해, 내가 널..." 스페이시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뒤, 자신에게 스위트하트는 무엇이었는지 단어를 선택하느라 머뭇거렸다. "...내 과거 연애 관심사로 착각했어."
그 여성은 스페이시의 머뭇거림에 즐거워하며 웃었다. "어라라... 이 젊은 신사분은 누구죠?" 그녀가 물었다.
스페이시는 그녀의 우아함에 똑같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스페이시야."
"제 이름은 메이도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스페이시씨." 메이도라는 이름의 메이드는 인사하며 드레스 끝자락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스페이시의 표정이 미묘하게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괜찮아요? 안색이 약간 안 좋아 보이시는데."
마른 웃음이 스페이시의 목에서 나왔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그냥... 최근에 내 존재에 관련된 위기를 겪어서."
"아, 그것 참 안됐네요." 메이도는 도움을 주기 전 잠시 무언가 생각했다.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알고 있어요. 그녀는 우리 모두 중 가장 현명한 자이죠."
"정말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스페이시는 예전에 이 세상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아마도 가장 현명한 자가 약간의 식견을 쌓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이죠. 부디, 이쪽으로." 메이도는 스페이시에게 따라오라 손짓하고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메이도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듯 혼란 없이 거리를 누볐다. 메이도는 스페이시를 얕은 연못으로 이끈 뒤, 소매를 더럽히는 새까만 물에 개의치 않고 손을 담갔다.
메이도가 돌아서며 스페이시에게 검은 소라껍데기를 건넸다. "눈을 감고 소라껍데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스페이시가 들은 대로 하자, 소라껍데기 속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초 후, 짠 바닷바람이 스페이시의 얼굴을 스쳤다.
눈을 뜨자, 메이도와 함께 해변에 서 있었고, 해파리 막대, 바다 연꽃, 산호 덤불들이 이 근처에 놓여 있었다. 이곳은 헤드스페이스처럼 다채롭고 밝았지만, 오른쪽 시야의 비틀림은 스페이시에게 다른 것을 말해주었다. 이런 종류의 공간은 드물지만 존재한다.
해변에는 종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모양으로 보니 폴라로이드 사진인 것 같았다. 강렬한 햇빛에 그 위에 있어야 할 것이 모두 바래져 있고, 두꺼운 마커칠에 뒤덮여 사진들은 더더욱 훼손되었다.
비치볼이 스페이시의 근처로 굴러왔다. 스페이시가 비치볼을 집어드는 동안, 뾰족한 머리와 거대한 눈이 있는 한 남자가 가까이 왔다. 그 남자는 스페이시를 보다가 메이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야, 새로운 사람이잖아! 쟨 누구야?
메이도는 스페이시를 가리켰다. "유니 씨, 이쪽은 스페이시 씨예요." 메이도는 그 남자에게 손을 휙 내밀었다. "스페이시 씨, 유니씨랑 만나보세요. 유니씨는 제 친구 중 한 명이에요."
"요, 여기는 새로운 사람을 보기 힘들지. 만나서 반가워." 유니가 비치볼을 들어올렸다. "나랑 게임할래? 혼자서 하는 건 지겹거든."
스페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어쩌면 다음 기회에. 메이도의 또 다른 지인을 만나러 왔거든."
"저흰 애비님을 찾고 있는데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메이도가 유니에게 물어보았다.
"타코 말이야? 저기 있어." 유니는 멀리 있는 작은 산호 나무 옆에 앉은 한 여성을 가리켰다. "근데 원하는 게 뭐든, 타코가 오랫동안 정신이 나가 있던 건 알고 있지?"
"말조심하세요, 유니씨." 메이도는 유니에게 냉엄한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난 뒤 그녀는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스페이시에게 몸을 돌렸다. "애비님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스페이시씨가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뭐, 가능성 있네. 스페이시는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기대를 수다스러운 고양이 정도로 낮췄다.
그들 셋은 애비, 즉 타코 쪽으로 갔다. 타코는 슬라임 소녀들의 종족과 가까운 친척으로 보였는데, 오른팔을 제외한 모든 팔다리가 촉수이며 머리 위에는 추가로 촉수 한 쌍이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상의로 티셔츠와 재킷을 입고 있었지만, 하의가 속옷 한 벌 뿐이었다. 스페이시는 옷차림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모습을 가장 현명한 자라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타코는 매우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으로 산호 나무에 기대 잠을 자고 있었다. 메이도가 부드럽게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애비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촉수 여자가 고개를 올려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타코의 얼굴은 아무것도 없이 점이 입처럼 되어 있는 커다란 물음표였다. 입이 말아 올려져 있어, 그녀가 웃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안녕!" 타코는 활기찬 목소리로 그들을 맞이했다.
"만나서 반가워, 난 스페이시야." 스페이시는 그녀의 옷차림이나 유니의 말에 개의치 않고 타코를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 타코가 되풀이했다. 여전히 전처럼 활기찼지만, 또한 그것 때문에 기이하다.
스페이시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니가 옳았다. 타코는 슬프고 불쌍하게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정신은 이 한 단어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스페이시가 물었다.
메이도는 타코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타코는 애비님의 옛 이름이에요. 애비님은 아주 오래전의 헤드스페이스의 세 존재 중 가장 현명한 자였죠. 한창때 애비님은 몽상가 도련님의 조언자였어요. 애비님의 지혜는 도련님이 많은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었죠."
슬픔이 그늘처럼 메이도의 얼굴을 뒤덮었다. "불행하게도 애비님은 도련님께 반하는 죄를 지었어요. 도련님은 분노하여 애비님의 이름과 지혜를 빼앗고 헤드스페이스에서 떨어진 곳에 가둬버리셨죠. 애비님은 가끔 다시 위로 올라오려 시도하시지만 소용이 없어요."
"그럼 이게 애비에게 남은 거야?" 스페이시는 애비가 겪은 일에 공감하면서도 오모리의 분노에 공포를 느꼈다.
"아니, 걘 애비가 아니야. 바보 같은 메이도는 자꾸 이런 실수를 하고 앉았지." 유니는 비치볼을 활짝 핀 바다 연꽃 속으로 던져 넣으며 말했다. "애비는 깊은 우물 근처의 심연으로 추방됐어. 이 타코는 복제품 비슷한 무언가야.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헤드스페이스 어딘가에 또 다른 '우주소년 선장'이 있을 거야." 스페이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도는 공을 집어들어 유니에게 주었다. "도련님은 아주 외로우셔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꿈꾸죠. 듣기로는 그것 때문에 헤드스페이스와 블랙스페이스가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고 해요. 이곳들은 청소가 좀 필요해 보이는데 제가 힘없는 단순한 메이드라서 아쉬워요."
"아무튼, 주제에서 벗어났었네요." 메이도는 약간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스페이시에게 고개를 돌렸다. "물어볼 질문이 있으시죠? 애비님은 저와 유니씨에게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많은 걸 가르쳐 주셨으니, 아마 스페이시씨와 식견을 나눌 수 있을 거에요. 표현하는 것 만으로도 후련함을 느낄 수 있는 법이죠.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네." 스페이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몽상가가 깨어 있을 때 이 세상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
"아무것도?" 유니는 한가하게 비치볼을 가지고 놀았다. "몽상가는 깨어 있을 때 대부분 그 무엇도 하지 않아. 몽상가의 모든 상상력은 헤드스페이스와 이어진 다른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헤드스페이스를 계속 움직이는데 쓰이고 있지!"
"사실, 난 깨어있는 세상에서 방금 돌아왔어." 스페이시는 수업 중에 말하려는 학생처럼 손을 들었다. "써니가 깨어있는 세상의 켈과 나가서 노는 걸 봤었지. 즐거워하는 것 같았어!"
메이도와 유니 둘 다 놀라며 스페이시를 쳐다보았다. 타코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평소처럼 미소짓고 있었다.
"어머나, 도련님이 나가셨다고요? 정말로? 엄청난 발전이네요!" 메이도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막았다.
유니는 뛰어다니며 신나게 비치볼을 높이 던져 올렸다. "오예! 몽상가가 마침내 이 세상을 벗어났다! 우리 모두 이 세상과 함께 죽고 사라질 수 있어!"
뭐라고?
"잠깐, 잠깐만, 죽는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스페이시는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그저 잘못 이해했기를 바랐다. 왜 죽는다고 하는 건데?
메이도는 학생의 어려운 질문을 알려주는 교사처럼 스페이시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도련님은 깨어있는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강력한 헤드스페이스를 만들었어요. 만약 도련님이 살아있는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산다면, 헤드스페이스와 헤드스페이스의 주민들을 계속 생각할 마음이 없겠죠. 그리고 도련님이 저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다면 저희는 이 세상과 함께 잊혀지고 없어질 거에요."
유니는 공을 걷어차고 나서 타코의 팔을 잡고는, 기쁨에 타코와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타코는 당황하며 어설프게 유니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정말 좋은 소식이야! 드디어 우리의 시대가 끝났어!" 유니는 힘차게 소리쳤다.
이게 뭔 엿같은 장난질이지?
"저희랑 같이 축하해요." 메이도는 우아하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어 스페이시를 초대했다. "기쁨에 심장이 멈추고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같이 춤을 춰요." 메이도는 순수한 행복의 미소를 띄었다.
스페이시의 심장은 오래전에 멈췄다.
스페이시는 메이도와 유니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행복의 조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스페이시가 써니를 도와주었을 때, 그는 그 대가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스페이시가 한 일은 세상과 그 안의 모두에게 종말을 가져오는 것 뿐이었나? 머리가 어지러웠다. 스페이시는 저들의 논리에서 문제점을 찾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끔찍한 분노가 스페이시를 집어삼켰다. "그냥 받아들일 거야? 우리 모두 죽게 될 건데, 너희들은 전부 그 빌어먹을 축하를 하기로 했다고?!" 스페이시의 목소리는 스트레스로 인해 갈라졌다. 심장이 있던 구멍에서 탁하고 검은 점액이 흘러나왔다.
메이도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련님이 깨어있는 세상에서 행복해지길 바라시지 않나요?" 메이도는 참을성 있게 물었다.
"알아, 안다고! 하지만..." 스페이시는 써니를 돕겠다 맹세했었다. 그렇지 않나? 몽상가는 마침내 깨어있는 세상에서 행복의 조각을 찾아냈다. 스페이시는 그를 위해 기뻐해야 하고!
"죽고 싶지 않아!" 스페이시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다른 세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스페이시를 보았다. 스페이시는 쓰러졌다. 그는 상처 위에 손을 얹고 상처를 눌렀지만 오히려 더 많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스페이시는 블랙스페이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자신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바다가 그들의 뒤에서 소용돌이치며 포효했다. 갑자기 거대한 붉은 손이 바다괴수의 머리처럼 수면에서 튀어나왔다. 하늘은 붉은 손이 나타나자 점차 어두워지더니 칠흑같이 새카매졌다.
손은 다름 아닌 스페이시에게 달려들었는데, 스페이시는 정신줄을 놓고 있었기에 피하지 못했다. 손은 스페이시를 단단히 움켜쥐고 그를 뒤로 끌고 갔다. 스페이시가 물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타코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었다.
물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우주의 진공 상태에서 발버둥치는 것과는 달랐다. 유일한 공통점은 숨 쉴 공기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건 스페이시가 며칠 동안은 견딜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은 순식간에 물에 흡수되어 주위가 밤처럼 어두워졌다.
물과 손가락이 스페이시를 짓눌렀지만, 그를 굴복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스페이시는 눈을 뜨고 있으려 안간힘을 썼다. 심해는 비어있지 않았다. 거대한 아귀들이 미끼로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작은 눈알 무리들이 유일한 광원에 이끌려 물고기들에게 잡아먹혔다. 스페이시가 그들의 옆을 지날 때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너무 희미한데다 일관성이 없었다.
붉은 손이 스페이시가 어디에 있을지 결정하고 있었다. 손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스페이시를 뒤로 끌고 내려갔다.
결국엔 풍경과 움직이는 방향이 바뀌었다. 붉은 빛이 어두운 물 속을 뚫고 들어왔지만 시야가 점점 흐려지는 바람에 시야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졌나?
작은 튜브 모양의 물체가 스페이시의 뒤통수를 쳤다. 그 물체는 앞으로 굴러가다 아귀에게 잡혔다. 그것은 스페이시의 시야에 잠깐만 들어왔지만 스페이시는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사람의 손가락. 스페이시는 두려움에 오한을 느꼈지만, 이 공간의 물은 피처럼 미지근했다. 이건 피였다. 이곳의 물은 많은 피와, 약간의 살점과 뼈와 내장이 진홍빛 물 속에 떠 있었다. 신선하고 부패한 피가 뒤섞인 채, 스페이시의 입으로 들어오는 몇 밀리리터는 그를 구역질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긴 대체 뭐야!? 블랙스페이스는 가끔 비현실적으로 잔혹했지만, 이건 정말 끔찍하다!
그들은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스페이시는 이 공간의 높은 허공에 붙잡혀 있었다. 그에게 보이는 건 붉은 물, 붉은 하늘, 그리고 엄청난 양의 붉은 손으로 모든 것이 붉었다. 자신과 몽상가, 그리고 청록색 머리의 소년까지 세 명의 존재만 제외한다면. 스페이시가 소년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는 화관으로 소년을 알아보았다.
헤드스페이스의 바질은 수면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제발, 그만두라고 해 줘! 살려줘!" 바질은 자비를 구했다. 작은 붉은 손들이 그를 제자리에 가둔 채 벌레처럼 사지를 하나씩 떼어놓겠다 위협했다.
오모리는 물결치는 수면에서도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서 있었다. 오모리가 바질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칼은 피와 녹으로 덮여 있었지만, 일을 끝내기엔 충분했다. 손이 바질의 몸을 꽉 붙잡았다.
"그만해!" 스페이시가 애원했다. 스페이시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꿈틀거리며, 물어뜯고, 순간이동까지,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오모리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모리는 계속해서 바질을 찌르고 난도질했다. 바질은 비명을 질렀지만, 목소리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액체 때문에 곧 그르륵거리는 소리로 변했다.
스페이시는 잔혹한 살해 현장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지켜보았다. 오모리는 전에 한 번 그를 죽였었지만, 잔인함은 이에 비할 수 없었다. 이건 순수한 악의였다!
자신은 몽상가의 목표를 찾기 위한 여행을 나서지 않았었나? 이거였다.
공범의 형상은 오모리가 직접 처분할 수 있는 블랙스페이스의 중심부로 옮겨져 몽상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좌절감을 쏟아낸다. 그게 전부였고, 곧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될 것이다.
바질이 살아있다는 모든 흔적이 몸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오모리는 긴 숨을 내쉬며 잠시 카타르시스에 빠졌다가 공허한 자아의 모습으로 거의 돌아왔다. 오모리는 바질의 시체를 발판 삼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모리가 걸어가자 부서진 계단들이 물속에서 솟아 올랐다. 계단이 없을 땐 붉은 손이 와서 잠시 계단이 되었다. 올라감의 끝에는 긴 검은 머리카락이 위에 희미하게 나타난 두 손으로 만들어진 왕좌가 있었다.
이 세계의 지배자는 자신의 왕좌에 앉았다. 곁눈질하자 그가 불러낸 손님을 붙잡은 손이 가까이 다가왔다.
스페이시는 마음속에 혼란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몽상가를 바라보았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스페이시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최대한 자신을 무시하며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왜 갑자기 마주하는 걸까? 자신이 마침내 선을 넘은건가? 애비랑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오모리는 사진을 꺼내 스페이시에게 보여줬다. 나무에 매달린 마리의 흑백사진은 겨우 2초정도 지속되다가 현상되지 않은 필름처럼 검게 타올랐다. 오모리가 손가락을 놓자 불에 탄 사진은 펄럭이며 붉은 호수의 신체 부위들과 함께했다.
"뭐?" 스페이시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모리가 무언가 요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오모리의 수수께끼 같은 질문 방식은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모리의 얼굴은 아주 조금 비틀렸다. 오모리의 불쾌하단 반응에 거대한 손이 갑자기 힘을 주었다.
스페이시는 비명을 지르고 울며 울부짖고 토했다. 손톱이 한 줄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스페이시의 속은 손의 독기에 닿아 침식되었다. 피, 담즙, 검은 액체가 기도를 막아 비명을 계속 지를 수 없게 만들었다. 몸부림은 점점 약해졌다.
스페이시의 움직임이 멈추자 오모리는 다시 입을 내밀었다. 거대한 손이 힘을 풀자, 움직이지 않는 몸은 부딪히곤 아래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