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Voyager Out of Headspace
Voyager Out of Headspace
헤드스페이스를 벗어난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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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 나무 문 뒤의 희미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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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소년은 자신의 연과 끊을 수 없는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과 연은 함께 절대로 잦아들지 않는 전설적이고 완벽한 바람을 찾아 여행을 다니며, 매일 그들은 바람을 타고 움직여 최고의 바람이 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
최근, 바람은 그들을 바람개비 숲으로 데려왔다. 이곳의 기류는 최고였으며, 장애물도 없이 안정된 흐름으로 헤드스페이스에서 연을 날리기 가장 좋은 장소다. 몇 주 동안 소년과 연은 이곳에서 야영하며 거대한 바람개비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다. 소년은 언젠가 이곳에 완벽한 바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씩 연과 소년 듀오는 동료가 생기기도 했다. 그들은 때때로 소년과 연에게 친절하게 싸움에 도전했고, 그 뒤엔 듀오의 바람을 쫓는 활동에 가담했다. 안개의 바다에서 여러 모양의 연들이 하늘의 끝을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는 건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마리라는 이름의 십대 소녀만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 마리는 무릎이 좋지 않아 뛸 수 없었기에, 항상 소풍 담요 위에 앉아서 연 소년 듀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지켜보았다.
어느 날, 바람개비 숲의 바람이 불안하게 불었다. 보아하니 바람개비 중 하나가 고장난 듯 했다. 바람개비가 불규칙하게 돌아가며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바람으로 하늘에 강한 난기류가 일어났다.
연 소년이 이 일을 안 좋은 징조라 생각하던 중, "그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의 눈가에서 어두운 공허가 하늘에서 어렴풋하게, 구름조차 가릴 수 없는 칠흑같이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저기, 마리 누나?" 연 소년은 항상 이곳에 있는 다른 이에게 이야기 해보기로 결심했다. "내 기분 탓인지, 요즘 들어 어두운 공허가 더 자주 나타나는 거 같은데?"
마리가 고개를 들자, 어두운 공허가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두드러져 보였다. "응, 맞아."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나서 마리는 두 팔을 구부리며 으스스한 몸짓을 취했다. "어쩌면 어두운 공허가 네가 나쁜 아이라는 이유로 쫓고 있는 걸지도 몰라!" 마리는 키득거리며 농담만 했다.
연 소년은 마리의 가벼운 농담에 웃지 않았다. 어두운 공허는 나쁜 아이들이 결국 가게 되는 곳이라는 소문이 있다. 연 소년은 자신이 좋은 아이라 생각했기에 가능하면 어두운 공허를 멀리했다. "나와 내 연은 나쁘지 않아. 우린 사람들이 원할때만 싸운다고." 소년은 멍하니 말했다.
바람이 너무 강하니, 이런 날씨에선 완벽한 바람이 나타나지 않겠지. 연 소년은 자신의 연을 감아올리며, 오늘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 했다.
연줄이 갑자기 당겨지지 않았다. 연은 연 소년만이 들을 수 있는 비명을 질렀다. 연 소년이 고개를 들자 놀라서 숨을 턱 내쉬었다.
줄이 어두운 공허에서 튀어나온 장대의 맨 아래 부분에 얽혀 있었다. 연 소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건 단순한 금속 장대가 아니라 풍향계다.
난기류가 연에 부딪히며 풍향계는 미친 듯이 돌아갔다. 풍향계가 회전할 때마다 연을 어두운 공허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연 소년은 풍향계와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 소년은 몸을 낮추고 줄을 확 잡아당겼지만, 연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연은 줄이 양쪽에서 너무 세게 당겨져 더욱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줄은 비유적으로든 말 그대로든 연 소년을 상처입혔다.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줄에 손가락이 베였다. 연 소년의 피가 줄을 덮고 있어 줄이 미끄러운데다 당기기 힘들었다.
연 소년은 앓는 소리를 내며 더 잘 붙잡기 위해 연줄을 팔에 감았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자신과 연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연 없이는 아무데도 못 가...!
그러나 풍향계는 마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듯이, 산업용 팬의 힘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연 소년이 연을 감아올리는 대신 풍향계가 둘을 어두운 공허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리 누나? 좀 도와줄래?" 연 소년은 이를 악문채 단어를 쥐어짰다. 온 몸이 플랫폼 가장자리로 끌려가며 푸른 잔디 위에 두 줄의 자국이 움푹 파였다.
마리가 일어섰지만, 무릎이 안 좋은 것이 불운이었다. 마리가 소년의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가장자리에서 날아올랐다. 마리는 연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것을 공포에 질린 채 바라보았다.
연 소년은 줄에 바짝 붙어 몸을 웅크렸다. 어두운 공허가 자신을 데려가려 했지만, 적어도 그는 아직 연과 함께 있었다. 소년은 두려움에 눈을 감고 충돌을 기다렸다.
금속 장대에 강하게 부딪히는 대신, 연 소년은 연이 날카롭게 베이는 것을 느꼈다. 그가 눈을 뜨자, 그 다음에 모든 일들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다.
어두운 공허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왔고, 줄은 그것이 만지는 순간 갈가리 찢겼다. 아무런 도움 없이 연 소년과 소년의 연은 플랫폼 옆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먹이를 잡는 매처럼 급강하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몸을 줄인 채 그것은 듀오에게 다가갔다. 두 개의 뾰족한 다리가 뻗어 나와 둘을 허공에서 감쌌다.
갑자기, 그들이 날아가는 방향이 바뀌었다. 떨어졌지만, 땅이 옆에, 아니, 아래? 그들은 옆구리로 희뿌연 잔디에 부딪히고, 튀어오르고, 구르며, 마침내 속도가 느려지며 멈췄다.
연 소년은 몸을 떨며 연을 품에 안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연은 물기 가득한 큰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돛에는 찢어지거나 뜯어진 부분이 많았고, 연줄과 굴레의 일부도 잘렸지만, 대체적으로 연 소년에게는 손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잔디 위에서 나는 빠른 발소리를 들었다. "어머나! 괜찮니?" 마리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연 소년은 일어나려 하다가 마침내 줄이 자신과 연, 그리고 자신을 구조한 자를 휘감아 묶어 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리는 킥킥 웃었다. "보아하니 꽤나 귀찮은 상황에 얽힌 것 같네!" 마리는 말장난할 기회를 찾자 바로 붙잡았다.(bind는 묶다, 곤경에 처하다 두 가지 뜻이 있음) 마리가 묶인 줄을 푸는 동안 나머지 셋 모두 짜증섞인 투덜거림을 내뱉었다.
마침내 자유로워지자, 연 소년은 그들을 구해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돌아섰다. "고마워, 어..." 소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연을 꽉 붙잡으며 그 생명체에게서 벗어났다.
그의 앞에는 두 개의 원통형 몸체와 세 개의 거미 다리를 가졌으며 검은 점토로 이루어진 키가 큰 생물이 있었다. 세로로 떠진 하나의 눈은 오른쪽 몸체에 있었고, 왼쪽 몸체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 생명체가 약간의 소리를 냈지만, 연 소년에게는 그저 알아듣지 못할 소음으로 들렸다. 낯선 공포감이 연 소년의 몸 속에 스며들었다. 그는 몇 걸음 더 물러섰다.
저 생명체가 방금 자신의 목숨을 구했지만, 어두운 공허처럼 도망쳐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생명체는 연 소년의 반응을 불쾌히 여기지 않았다. 괴물은 일어서서 떠나려 했지만, 마리가 길을 가로막았다.
"잠깐만, 연 소년! 널 구해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야지!" 마리는 연 소년의 행동을 가볍게 꾸짖었다. 그 후에 그녀는 그 생명체를 향해 돌아섰다. "고마워. 이름이 어떻게 되니?"
생명체가 망설이다 대답으로 더 큰 소음을 내었다. 마리는 섬뜩함에 신경쓰지 않고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음... 네 말을 못 알아듣겠는데... 아, 잠깐!" 마리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오모리가 전에 네 얘기를 했었어! 네 이름이 스페이시구나, 그렇지?"
연 소년은 여전히 '스페이시'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보아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그 생물을 지칭할 다른 이름이 없었기에, 그들은 이름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고마워." 연 소년이 말했다. 그는 그저 감사를 전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며 두려움을 억눌렀다.
마리는 자신의 소풍 담요로 돌아갔다. "상황이 크게 나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네. 내 옆에 앉아서 음식 좀 먹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마리는 과일을 몇 개 꺼내 그들에게 주었다.
이 특이한 조합은 소풍 담요 위에서 편안히 쉬었다. 연 소년은 도구를 꺼내 연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도록 천천히 고쳤다. 스페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한동안 먹지 않은 듯 조용히 음식 더미를 삼켰다. 마리는 미소를 지으며 바닥이 없는 것 같은 바구니에서 더 많은 음식을 꺼냈다.
풍향계와 어두운 공허는 다시 사라졌다. 연 소년이 스페이시를 힐끗 쳐다보자, 낯선 존재가 있다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이 존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연 소년은 이게 어두운 공허로 사라진 사람들의 운명인지 궁금해했다.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스페이시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마리는 다른 곳에 있는 사다리를 가리켰다. "저기, 오모리랑 친구들이야!" 마리가 태평하게 말했다. 그들은 사다리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 아더월드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페이시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스페이시는 사다리를 향해 달려가 손가락 없는 사지로 문제 없이 내려갔다.
"오모리랑 친구들을 뒤쫓는건가?" 연 소년이 물어봤다.
마리는 시선을 사다리에서 연 소년으로 돌렸다. "오모리랑 친구들이 걱정되니?" 마리가 웃으며 물었다.
연 소년은 연에 새 줄을 붙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스페이시가 해를 끼칠 거라 생각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연 소년의 하루는 특별한 문제 없이 평화롭게 계속되었다.
우주소년 선장은 몽상가가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을 때 여정이 끝났다고 확신했었다.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 자신이 직접 찔렀을 때. 대신 헤드스페이스는 그를 상처투성이지만 "살아있는" 상태로 두기로 결정했다. 그게 몽상가의 적극적인 선택이었는지는 자신이 답을 낼 수 없는 일이다.
선장이 다른 공간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그로 인한 영향이 축적되었다. 블랙스페이스처럼 그도 색깔이 벗겨졌고, 오른쪽 눈의 상처는 퍼져나가 얼굴의 오른쪽을 덮었기에 더 이상 눈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 오모리가 가슴에 남긴 상처는 낫지 않았다. 상처는 보기에도 소름 끼치고 지저분했으며, 상처를 만지려 하면 둔한 통증이 느껴졌다.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잔인하게 빼앗겼는지 상기시키기 위해.
두 자아 사이의 구조도 바뀌었다. 그들은 번갈아 가며 공유된 몸을 사용하고, 자신만의 기억을 간직하곤 했었다. 최근 이 경계가 희미해졌다. 그들은 동시에 같은 몸을 통제하고, 기억은 서로에게 공유된다. 조율의 부족으로 많은 문제가 일어났지만, 서서히 호흡이 맞춰지고 있었다. 둘의 마음은 조잡하게 꿰매어져 있지만 완전히 섞이진 않았다.
처음에, 그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헤드스페이스를 돌아보기로 결심했었다. 또 다른 "우주소년 선장"이 그의 자리를 대신한 것을 빼면 그가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과 스위트하트가 번지점프처럼 사랑에 빠져드는 것을 보았다. 아빠와 선원들이 "자신"의 터무니없는 행동에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관찰들은 그가 얼마나 어린애였는지 알게 해줬고, 또한 믿기 힘들 정도로 외롭게 만들었다.
그는 이전에 다른 헤드스페이스의 주민들과 이야기하려 시도했지만, 그들은 모두 그에게 다양한 정도의 두려움으로 반응했다. 어떤 이는 도망갔고, 어떤 이는 자비를 구했으며, 어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와 싸웠다.
자신을 대신했던 우주소년의 반응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대신했던 존재가 잔혹하게 죽은 후 헤드스페이스의 사람들과 소통을 멈췄다.
연 소년을 구한 것은 그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한 것이었다(아니면 몇 년 만에, 시간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의 손아귀에 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가 자신을 평범한 사람처럼 대하는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즐거운 놀라움이었다. 그 기분을 거의 잊어버렸었다.
"우주소년 선장"은 더 이상 헤드스페이스의 주민이 아니었으며, 블랙스페이스의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세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형이었다. 그것이 그가 가끔 구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블랙 스페이스를 오가게 만들었다. 분명히 몽상가는 그를 '스페이시'라 불렀다. 그의 다른 자아는 이 이름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자신을 부르는 방법이다.
스페이시는 스스로에게 몽상가의 진짜 목표를 찾는 임무를 줬다. 몽상가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단순한 시간 죽이기 이상인 것 같았다. 너무... 반복적이고 틀에 박혀 있다. 이건 몽상가가 필사적으로 일상을 따라하는 것에 가깝다.
표면적으로, 몽상가의 목표는 언제나 실종되었다고 하던 바질이라는 이름의 꽃 소년을 찾는 것이다. 몽상가와 그의 친구들이 어떻게 목표에 도달했는지는 때때로 달랐지만, 항상 몽상가가 죽거나 홀로 블랙스페이스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다음엔 헤드스페이스가 리셋되고, 모든 게 다시 시작되었다.
스페이시와 몽상가의 친구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몽상가가 저지른 범죄를 도운 공범인 바질은 헤드스페이스의 표면에서 추방되었다. 스페이시는 블랙스페이스에서도 바질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헤드스페이스에서만큼 효율적으로 그 공간을 조사할 수 없었기에, 스페이시가 아직 정확한 장소를 찾아내지 못했을수도 있다.
스페이시는 또한 몽상가를 따라 블랙스페이스의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려 해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몽상가는 주변 환경에 민감해 항상 숨어있던 스페이시를 알아채고 잠시 그를 다른 장소로 보냈다.
전반적으로, 그가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많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왜냐고? 왜냐하면 그는 스위트하트의 지하감옥에서 몽상가와의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몽상가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면 끝나지 않는 반복 속에서 몽상가처럼 지루한걸지도.
스페이시는 몽상가와 친구들이 사다리를 타며 아더월드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텔레프트를 하기엔 두 사다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더 먼 길로 가야 한다.
그는 드넓은 숲을 질주했고, 숲길의 모든 새싹두더지와 토끼들은 헤드스페이스의 혐오스러은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아무도 앞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스페이시의 일이 쉬워졌다.
표지판이 보였고, 아더월드로 가는 사다리는 몇 분 거리에 있다. 스페이시는 오른쪽으로 돌아 놀이터로 들어갔다.
놀이터는 완전한 흑백이었다.
"젠장!" 스페이시가 답답한 마음에 소리치며 주먹으로 나무를 쳤다. 그의 다른 자아는 머릿속에서 격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은 확실히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 좋아했다.
블랙스페이스에 있는 이 놀이터는 제대로 매장 되지 않은 묘지 같았다. 몽상가의 거대한 머리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어떤 것들은 갈라졌고, 어떤 것들은 거의 온전했지만, 전부 쪼그라들어있었으며 흉측했다. 그것들의 눈알은 건포도처럼 말라 있었고, 그 자리엔 곰팡이 핀 구멍 한 쌍만이 남아 있다. 메마르고 주름진 살갗은 두개골을 감싼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입 안에는 바늘같이 날카로운 이빨이 줄지어 있었다.
소름끼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머리들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것들의 입에서 약간의 악취가 나는 따듯한 공기가 흘러나온다. 스페이시는 눈살을 찌푸리고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는 테더볼 기둥 위에서 돌고 있는 피냐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직도 의욕에 가득 차서 소리를 지를 수 있지?
스페이시가 할 수만 있다면 바로 이곳에서 걸어 나갔겠지만, 이 놀이터는 출구 없는 두터운 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텔레포트 능력도 여기에서는 소용이 없다. 스페이시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장소가 그를 내쫓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가 나무 벤치 중 하나에 눕자, 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다리는 동안 낮잠을 자는 게 낫겠어. 머리들이 악취 나는 숨을 내뱉는 이 장소는 그리 편안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 환경을 고를 수 없었다. 스페이시는 눈을 감고 긴장을 풀었다.
...
갑자기 불어온 썩은 입김에 스페이시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악취에 코를 막으며 기침을 하다 공포에 질려 악취의 근원에서 허둥지둥 벗어났다.
거대한 머리 중 하나가 그의 머리 위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목 졸린 숨결이 섞인 흐느낌이 얼굴 구멍에서 새어 나온다. 머리는 마치 물고기가 작은 새우를 먹듯 물어뜯었다. 스페이시는 옆으로 굴러 벤치 아래로 내려갔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그는 재빠른 생각으로 벤치 밑으로 몸을 옮겼다. 머리가 너무 커서 이렇게 좁은 공간에는 닿지 않겠지. 그는 몸을 나무 판자처럼 곧게 펴고 피신처 밖으로 사지가 튀어나오지 않게 했다.
갑자기 밑에 있던 땅이 무너졌다. 아니면 갈라졌던지. 스페이시는 도망칠 곳 없이 곧장 새로 생긴 구멍으로 떨어졌다. 중력은 그의 머리가 아래로 향하게 하며 끌어당겼다. 스페이시는 잿빛 구름의 바다를 뚫고 잉크에 젖은 별자리를 가진 빛나는 하늘을 지나갔다. 그가 떨어지는 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졌다.
떨어질 곳이 콘크리트 바닥인가? 바닥을 보자, 불현듯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스페이시는 블랙스페이스에선 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하려 했다. 오, 사랑하는 별들이여, 사용할 수 있게 해주어라! 제발! 그렇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났다. 스페이시는 어느새 천과 플라스틱 더미 아래에 파묻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힘이 실제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세상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영향에 의해 세상은 그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모든 기력과 긴장감이 그의 몸을 떠났다. 스페이시는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천에 얼굴을 문질렀다. "하… 아… 빌어먹게 고맙네…" 그는 심하게 숨을 헐떡였다. 만약 아직 심장이 있었다면, 심장이 기차 엔진처럼 뛰고 있었을 것이다.
스페이시는 천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물건들로 가득 찬 커다란 상자 안에 있었다. 상자는 닫혀있지 않았지만, 바깥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는 더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 물건들 중 하나를 집었는데, 그 물건은 스위트하트 인형이었다. 이 상자는 다양한 봉제인형과 액션 피규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훌쩍이며 스위트하트 인형을 꽉 쥐었다. 적어도 인형은 자신의 애정을 불쾌해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진정한 후, 스페이시는 인형을 한쪽에 밀어놓고 상자 밖으로 기어 나왔다. 밖은 작고 어두운 침실이었다. 천장의 팬은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방 여기저기엔 골판지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더 큰 가구들은 손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침대에 사람이 있었다. 스페이시는 그 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 사람은 몽상가였지만, 모험을 떠났던 몽상가와는 약간 달랐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조금 더 크고, 더 따뜻해 보였다.
써니. 스페이시의 자아 중 한쪽이 머릿속에서 이름을 말했다. 그는 몽상가의 이 부분을 알아보았다. 이것이 오모리가 안전을 위해 숨겨둔 부분이었고, 몽상가의 마음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였으며, 스페이시가 몽상가를 지키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써니가 자다가 몸을 뒤척였다. 악몽이 써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스페이시는 그 어두운 구석들을 자주 다녔었고, 그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스페이시는 써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진정시켰다.
스페이시가 써니의 얼굴을 만지자 그의 손가락에 실 같은 것이 엉켰다. 그것들은 아주 희미한데다 잘 보이지 않았다. 스페이시가 집중하고 다시 시도하자 그것들이 그의 오른쪽 시야에 나타났다.
써니의 얼굴은 길고 검은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었다. 머리카락은 써니의 눈을 찌르고 코를 자극했으며, 심지어 입을 막아 써니를 고문했다. 써니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것들은 써니를 홀로 두지 않았다.
머리카락들은 천장에 매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 위에는 놀이터에 있던 얼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창백하고 뒤들린 얼굴이 있었는데, 다만 한 여성의 얼굴이었다. 더 많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써니의 숨을 막아 숨을 쉬지못해 흐느끼도록 만들었다.
스페이시는 머리카락을 잡아 써니에게서 떼어냈다. 처음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 써니가 다치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쉽게 부숴지는 머리카락이 부러졌다. 그는 지옥같은 얼굴을 노려보며, 그것이 달려들면 싸울 준비를 했다.
그것은 대신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남은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이시는 다시 써니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자면서 안정적으로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의 표정은 훨씬 평온했다.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평온했다.
"좋은 꿈 꿔." 스페이시가 속삭이며 써니의 머리를 다시 부드럽게 쓰다듬자, 그의 손길에 써니의 몸이 조금 더 긴장을 풀었다. 그는 방에서 나가기 전 다시 한 번 써니를 바라보다 조용히 나와 문을 닫았다.
스페이시는 자신이 있는 바닥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훨씬 어둡고 공허하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는 그의 초기 환영들 중 하나에서 이곳을 보았다. 창문 너머로 옅은 달빛이 비쳐 헤드스페이스에서는 보기 힘든 짙은 파란색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었다.
이 건물은 계단으로 이어진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스페이시는 익숙한 계단 꼭대기에 처음으로 섰다. 중력이 어깨를 짓누르고 두려움이 발을 묶는 게 느껴졌다. 스페이시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건 멍청한 짓이야,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건 몽상가의 두려움이야,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스페이시의 뒤를 몰래 따라가 스페이시가 아직 불안해하는 사이에 그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스페이시는 반사적으로 빠르게 돌아서서, 그 사람을 팔꿈치로 밀칠 뻔했다. 그는 실수로 몽상가를 치기 전에 멈출 수 있었다.

몽상가는 나른한 눈으로 스페이시를 바라보았다. 그는 스페이시의 공격에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그가 써니인지 오모리인지 분간하긴 어려웠다. 얼굴은 그가 써니라고 하고 있었지만, 그의 멍한 표정은 오모리의 것이었다.
"아, 미안해. 내가 널 깨웠니?" 스페이시가 물었다.
몽상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다시 스페이시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스페이시는 몽상가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었다. "아래층으로 데려다줄까?" 그는 인내심 있게 웃으며 물어보고 손을 내밀었다.
"..." 몽상가는 스페이시의 눈을 피했다. 그는 스페이시의 주변을 지나쳐 걸어갔지만, 계단 아래로 한 발짝 내려서자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몽상가는 여전히 무기력한 얼굴을 유지한 채 스페이시의 손을 잡았다. 그는 스페이시의 오른쪽 눈을 보지 않으며 손을 낮게 늘어뜨렸다.
스페이시는 천천히 일어나 몽상가를 계단 아래로 이끌었다. 스페이시가 절대로 뒤돌아 보지 않았기에 몽상가의 상태를 알려주는 유일한 신호는 오직 손 뿐이었다.
계단이 보기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그들이 한참동안 내려오는 사이 스펙이시는 오른쪽 벽에서 검고 작은 팔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조롱하는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쑤셨다. 따뜻하고 작은 손이 약간 땀에 젖은 채 스페이시의 손을 꽉 쥐었다.
"써니… 심호흡을 해…"스페이시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 네 생각만큼 무서운 게 아니야." 그 말은 마치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것처럼 그의 어떤 자아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쨌든, 그건 이 상황에 효과가 있었다. 스페이시의 뒤에서 심호흡이 들려왔다. 다른 손의 떨림은 줄어들었다. 그 그림자 같은 팔은 줄어들더니 바닥으로 사라졌다. 머지않아 안전하게 계단 아래에 도착했다.
몽상가는 아무 말 없이 스페이시를 두고 가버렸다. 호기심에 스페이시는 몽상가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지만 문을 넘자 몽상가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 이런 일도 있겠지.
1층은 춥고 음산했다. 벽에는 장신구, 사진, 꽃병으로 가득 찬 선반들이 있었지만, 모두 상자 안에 들어있는 채 벽 밖으로 튀어나온 나무 판자와 못만이 남아 있었다.
방들 중 한 곳에 무언가 있었다. 스페이시가 머리를 내밀자... 세 사람을 발견했다.
뭐, 이런 생각을 망설이는 것조차 무례하겠지. 비록 이 세계의 힘에 반복되어 변형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몽상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스페이시가 문 옆에서 훔쳐보는 것을 알아챘다. "오, 안녕, 우주소년 선장! 와서 우리랑 함께 앉자!" 켈은 스페이시를 열렬히 환영했다. 다른 둘도 돌아서서 그에게 미소 지었다.
약간의 망설임과 함께, 스페이시는 방에 들어가 거대한 낙서처럼 생긴 세 아이에게 합류했다. 방은 거의 비어 있었고, 여전히 괘종시계와 더 많은 상자들이 모퉁이에 쌓여 있는 채 그 사이에 접혀진 소풍용 담요가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네 사람은 어둠 속에서 나무 바닥에 둘러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길 몇 분 동안 기다린 후, 스페이시는 마침내 질문했다. "그래서... 뭘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마리를 기다리고 있어, 당연히!" 켈은 바닥에 느긋하게 누워 촉수같은 다리를 뻗었다. "마리 없인 소풍을 갈 수 없어!"
켈의 쾌활함과는 대조적으로 오브리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한 손은 고개 숙인 얼굴을 잡은 채 다른 한 손을 공중에 멍하니 휘적거리고 있었다. "마리는 오랫동안 우리를 무시해 왔어… 오모리가 마리에게 말을 걸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지."
스페이시는 얼굴을 찡그렸다. 오모리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생각한다면 다시는 이 방에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젠장, 몽상가는 방금 이 방을 지나갔는데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어!
히로는 암울한 분위기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머리를 휙 넘기곤 반짝였다. "마리는 그저 적응할 공간이 필요할 뿐이니, 돌아올 거야."
"마리가 어디 있는지 알아?" 스페이시가 혹시 뭐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물었다.
"아래." 히로는 긴 턱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히로가 그 말을 한 직후 멀리서 노크하는 소리가 연달아 방에 울려 퍼졌다. 스페이시는 마룻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곳이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리가 노크하는 거야?" 스페이시가 물었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자 다른 세 사람이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형태와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그들의 생명은 기형적인 몸을 남긴 채 떠나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지하로 가는 사다리가 어느샌가 나타났다.
스페이시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하실은 훨씬 더 어두웠다. 노크 소리가 그에게 답하라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내려갔다.
지하실은 길고 텅 빈 복도에 불과했다. 복도 끝에는 하얀 빛이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문이 서 있었다. 스페이시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고, 두 개의 반대되는 힘이 그를 양쪽에서 끌어당겼다. 그의 호기심이 그를 앞으로 유인하고, 몽상가의 두려움이 그를 뒤로 끌고 간다.
결국 스페이시는 문 앞에 섰다. 빛을 바라보자 동공이 수축했다. 노크 소리는 계속되었고, 스페이시는 문 너머의 존재를 감지했다.
" "
그 존재가 무언가 말했다. 말은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스페이시가 문 손잡이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몸을 슬금슬금 기어올라왔다. 이게 자신을 막으려는 몽상가의 마지막 노력일까? 알 수 없겠지.
스페이시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